영화에는 분석심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많다. 그 이야기들은 머리에 계속 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영화가 질문하고 나는 답을 한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영어의 원제는 ‘On body and soul’)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2017년 헝가리 영화이다. 영화는 소의 도축장에서 시작된다. 소가 도살되는 장면은 적나라하다. 목이 잘리고 잘려진 몸통이 걸리고 붉은 피는 바닥으로 흐른다. 남자 주인공은 도축장의 재무이사 엔드레 이다. 그는 채용 면접을 하면서 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한다. 불쌍한 마음이 없다면 도살일을 오래하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피를 무서워하고 예민한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마음이 없으면 도살일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의 살해를 무감각하게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오래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불쌍한 감정이 있어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를 도살하고 가공하는 일이 생계 유지를 위한 단순하고 반복되는 직업이지만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일을 하면서 점점 동물성, 원시적 심성, 본능과 멀어지는 것이다. 인정 어린 충고를 신입 사원에게 하지만 오히려 재무이사 엔드레가 불쌍한 것이다. 그는 왼팔이 마비가 되어 있고 표정이 없고 어둡다. 일상이 무미건조하고 지겹고 진절머리 난다고 한다. 감정적 관계는 단절되어 있고 성 생활 역시 단순 반복 행동으로 시들하고 뿌리 채 뽑혀 버렸다. 왼팔이 작동을 전혀 못하고 덜렁거리는 것처럼 왼쪽에 해당되는 영역이 전혀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왼쪽은 무의식, 동물적 본능의 영역이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의 분리로 고통을 받고 있다. 엔드레는 미묘한 심리싸움에 능한 능력을 가졌지만 인간 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단절한데 비해 마리아는 선천적으로 대인관계의 능력이 부족해서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있다. 여자 주인공은 품질 검사원 마리아이다. 그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사회적 의사소통의 인지능력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 그녀는 로봇처럼 걷고 얼굴은 경직되어 있으며 매우 부자연스럽다. 매우 고고하고 뻣뻣하고 철두철미하게 보여진다. 그녀는 주위 직원들과 사회적인 교류를 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다. 혼자 차가운 방에서 일만 하고 있다. 그녀는 매우 깐깐하게 융통성 없이 소의 등급을 판정하고 있다. 30대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랑의 기술이 전혀 없다. 연애의 기본인 밀땅을 전혀 하지 못한다. 타인의 의도나 감정,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두 사람이 비슷한 시간에 같은 꿈을 꾼다. 이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요힘빈의 분실 때문이다. 약의 분실로 집단 정신검진을 통해서 밝혀지게 된다. 요힘빈은 교미를 촉진시키는 약물로서 살해의 장소에 어울리는 약물은 아니다. 살해와 죽음의 장소에서 생의 충동과 살고자 하는소망의 발기 촉진제가 분실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기계적으로 소를 죽이는 파괴적인 의식적 삶 속에서 무의식적인 반작용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꿈 내용이다. “눈 덥힌 나무 숲에 암수 두 마리의 사슴이 따로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갈망해서 만나게 된다. 먹이가 없는 겨울 숲에서 수사슴이 눈을 헤집고 영양가 있는 잎을 암사슴에게 제공한다. 두 사슴은 물을 마시면서 코가 맞닿는다.” 의식의 공간은 붉은색 작업복과 소의 붉은 피인데 반해 무의식의 공간인 숲은 하얀 눈으로 차갑게 덥혀 있다. 그 차가운 공간에 두 동물의 사랑과 열정은 뜨겁다. 함께 물을 마시고 서로의 코가 맞닿는 장면은 춥고 황량한 숲을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꿈에는 사슴으로 등장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사슴이 자신이라고 연상을 한다. 꿈의 메시지는 건강한 자연의 동물적 본능으로 열정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집단 검진을 담당한 심리학자는 동시성 현상의 분석 심리학적 가설을 모르기에 두 사람이 미리 말을 맞춘 장난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순간에 어떤 것들이 의미 있게 함께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여기기에 너무 생생하고 기이했다. 꿈이 필연으로 바뀐다. 무의식에 배열된 내용이 현실에서도 배열되기 시작한다. 두 사슴이 처음에는 낯설게 서로 마주 보았으나 이제 서로를 향한 갈망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열등 기능을 분화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눈물겹도록 한다. 소아 때부터 정신치료를 받은 치료자에게 가서 연애기술을 가리켜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 노래를 들으라고 하고, 몸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신체와의 접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마리아는 벌써 포르노 시리즈 세 편이나 보았다고 한다. 그 방법보다는 눈을 감은 채 몸의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몸의 감각을 찾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몸 뿐 만 아니라 눈을 감고 도축장에 있는 소의 몸을 이리저리 어루만진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그녀에게 걸음걸이와 몸짓이 남자를 유혹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녀는 연애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고 모방하고 연습한다.
엔드레는 요힘빈을 훔친 사람이 산도로라고 오해를 한다. 산도로는 수컷의 본능을 솔직히 표현하는 남자였다. 실제로 범인은 인사부장이었다. 부인과 부부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강한 성적인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훔친 것이라고 고백을 한다. 엔드레는 그림자 인격을 산도로에게 투사한 것을 반성한다. 자신의 행동을 추잡한 것이라고 깨닫고 산도로와 화해의 대화를 한다.
마리아의 사랑을 향한 의지는 인생 전체를 거는 모습이다. 사랑이 좌절되고 실패라고 너무 성급하게 단정짓고 그녀는 자살시도를 한다. 그녀의 팔에서 뿜어 나오는 붉은 피는 죽음의 어둠에서 살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빛으로 보여진다. 피의 의지는 엔드레에게 전달이 된다. 두 사람은 꿈에서 처럼 함께 숲을 달리면서 함께 먹고 사랑을 나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영화 《 hungry heart 굶주린 마음》 2014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화장실 문이 고장이 나서 두 남녀가 갇힌다. 문처럼 환기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여자 미나는 미국 남자 주드의 똥 냄새를 참지 못한다. 주드 역시 너무 미안해 안절부절 한다. 고기를 먹고 단백질을 충분히 소화시킨 똥이 미나의 그림자 영역이다, 이 영역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며 풀어야 할 숙제처럼 보인다.
이런 강력한 만남으로 두 사람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결혼을 한다. 뜨거운 사랑과 행복한 결혼식이 지나고 가치관의 차이로 둘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생긴다. 미나는 반복되는 악몽으로 괴로워한다. “사냥꾼이 총을 쏘아 사슴을 죽인다. 그녀는 죽은 사슴을 보고 있다.” 그녀는 사슴을 죽인 사냥꾼을 증오한다. 고기를 먹는 세상 사람들이 사냥꾼들이고 자신은 불쌍한 사슴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녀는 잔인한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고 불쌍한 사슴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잘못된 해석이 채식주의의 가치를 더욱 강화 시켜 극단적 채식주의자의 맹신으로 빠지게 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식물과 동물을 가져와서 먹어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식물과 동물을 살해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 삶은 하나의 범죄이며 그 파괴성은 살고자 하는 소망에 따르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살해하는 것이 본능이고 인간의 운명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의식성이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라 할지라도 식물을 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 무의식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반복되는 꿈의 메시지는 미나가 사냥꾼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죽인다는 사실을 인식 했어야 했다. 자연의 지혜의 법칙, 자연의 원리를 향해 엄격한 인공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고 총을 쏜 것이다. 인간의 법 보다 자연의 법을 어길 때 더 어마어마한 보복이 따른다고 한다.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등 몸이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면 자신의 형이상학적 가치에 대해서 점검을 해야 한다. 건강한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몸이 문제를 호소한다면 잘못된 가치와 믿음으로 몸이 고통받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미나는 유제품까지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이다. 동물을 살해하고 거기서 나온 고기를 먹는 것을 너무나 혐오한다. 그녀는 임신을 했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아서 양수가 작고 태아의 발육도 신통치 않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은 강제로 인공 분만을 감행한다. 그녀는 몸에 해롭다며 초음파 검사도 받지 않을 정도로 현대 의료를 불신한다. 대체 의학이나 자연요법을 맹신한다.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듣지 않아서 저체중 아를 출산한다. 출산 이후에도 그녀는 4개월째 수유를 중단하고 씨앗과 채소로 이유식을 한다.. 아이는 체중이 증가하지 않고 발육상태가 10퍼센타일 이하이다. 그녀는 자신의 양육 방식이 옳다고 맹신을 한다. 미나는 세상과 단절하고 육아에 헌신한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병원에도 못 가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아들은 인디고 차일드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온 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양육 방법도 정화와 청결에 집착한다. 몸의 정화를 위해 밥도 잘 먹이지 않다. 단백질은 독이며 치명적으로 여긴다. 남편이 몰래 먹인 단백질의 흡수를 막기 위해 오일을 먹인다. 집 밖은 오염과 세균으로 가득하고 더럽다. 집으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세척과 정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미쳐서 손자를 굶겨 죽인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남편 주드는 미치지는 않았지만 좀 특이하며 정상 범주로 여긴다. 그녀는 내면의 상처가 많은 여성이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늙고 보살핌이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이제 서로에 대한 애정이 없고 왕래가 없다. 그녀에게 가족은 오직 아들과 남편 밖에 없다. 그녀는 슬프고 외롭고 불쌍한 여성임에 틀림없다.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한 여성이다.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무의식과 점점 멀어졌다. 존재의 두려움과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동물과 점점 멀어진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동물은 본능에 충실한 무의식적인 단순함을 가졌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짝짓기 하고 싶으면 짝을 찾을 것이다. 똥을 피하지 않고 어떤 영양가 있는 걸 먹었는지 똥 냄새도 맡아 보고 심지어 먹기 까지 할 것이다. 그녀의 의식의 태도는 그러한 순진하고 단순한 자발성에서 너무 멀어졌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살피고 돌보기 위해 내면에 존재하는 건강한 동물적 충동을 억압하고 죽여버렸다. 동물을 친구로 삼아서 동물들이 슬프고 외로운 지신을 보살피고 돌보게 했어야 했다. 잘못된 자아의 태도는 무의식의 보상적 영향력을 키운다. 아들을 신적 존재로 여기고 양육하는 엄마는 인간 이상의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그녀는 신성한 원형상에 빙의 되었고 정신적 팽창 상태에 있다. 어떻게 자아팽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주드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급해졌다. 부인의 고집과 맹신은 설득으로 통하지 않는다. 유괴의 방식으로 아이와 분리시킨다. 어머니와의 질긴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사코 어떤 도움도 청하지 않았던 주드가 어머니 집을 피난처로 삼는다. 미나 역시 아들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남편이 자신을 구타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아동복지국과 법원의 행정력으로 아들을 찾아온다. 시어머니는 더 급해졌다. 손자를 살리기 위해 며느리를 살해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총살 당한 사슴 꿈이 현실이 되었다. 감옥에서 시어머니는 자신 행동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시어머니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조화와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중심의 길을 찾아야 한다. 너무 성급하게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지 않고 순리대로 차분하게 해결 했어야 했다. “모든 성급함은 악마의 짓이다.”라는 연금술의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잘 알고 있던 어떤 여성을 총으로 사살한다. 나는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자수한다. 나는 기꺼이 감옥으로 간다고 말한다.” 이 꿈은 악몽이었고 고백하기가 부끄러운 꿈이었다. 나는 심각하게 이 꿈을 받아들였고 여성원리에 대해서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살인과 나의 살인은 같은 꿈이다. 나는 감옥에 갇혀 있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갇혀 있다, 나는 세상의 법을 알았고 내 행위가 범죄임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다른 가치를 위해서 죄를 지은 것이다. 파괴해야만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극단적 파괴를 감행해서 새롭게 구축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미나는 자신의 배 속에 똥이 있다는 사실을 거부했다, 더러움과 추함이 밖에만 있고 자신에게 있음을 거부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갖춘 전체라는 사실을 거부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식물과 동물을 먹어야 하는 파괴자이며 범죄자라는 사실을 거부했다. 인간은 신의 속성과 동물의 속성,고급 인격과 저급 인격을 모두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거부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의존해야 하고 무의식에서 독립될 수 없다. 양면 중에서 한 면 만을 전체로 여기는 것은 무의식성이며 자아 팽창이다. 미나는 자식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다. 본능을 충족시키지 않고 이상적 인격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학대이며 폭력이다, 특별함과 평범함, 아름다움과 추함, 신성한 면과 동물적인 면 등의 상반된 측면을 연결하는 것이 여성적인 본성의 핵심이다. 조화와 균형은 연결성이며 최고의 가치이다., 소가 살해되는 도축장과 두 사슴이 놀고 있는 숲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여성성의 가치이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아이는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반려 동물에 거는 기대는 동물적 수준이며 평범한 수준인데 비해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는 너무 높고 특별 나다. 그 기준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짐스럽고 고통스러우며 버겁다. 아이의 양육이 미나의 방식처럼 너무 인공적이며 부자유스럽다. 태어날 아이들은 자연의 힘을 가진 존재이다. 그 아이에게는 숲 속에서 노는 사슴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미나가 기대했던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아이의 자체 자발적 성장의 힘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부모의 팽창이다. 자연의 거대한 질서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세이다. 부모의 태도는 너무 오만하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사랑하고 연대할 수 있다. 또 같은 꿈의 목적성을 파악하고 당면한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마리아와 엔드레는 분석심리학을 모르지만 꿈의 목적성을 찾아서 고통을 감내했다. 불완전하지만 여성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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